나는 참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출근하고, 출근하자마자 수십 통의 메일을 체크한 뒤 30분 단위로 미팅을 하고, 틈틈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중간 중간 행사장에도 다녀와야 한다. 하루에 4~5개 브랜드의 행사가 겹치는 날엔 메뚜기처럼 강남과 강북을 가로지르다가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사무실로 복귀해 업무를 볼 짬이 생긴다. 어떤 날은 촬영 때문에 12시간 이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내고, 마감을 맞추기 위해 아침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며 서울에서의 자체 백야를 경험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쭉 지내고 있지만 젯셋족이 된 것마냥 일주일에 몇 번씩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할 땐, 특히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새벽 시간에 잠자리에 들 땐 데이 크림을 발라야 할지, 나이트 크림을 발라야 할지 헷갈린다.
반대로 주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여유롭다. 이렇듯 나의 생체 리듬과 스킨 케어 루틴은 한마디로 엉망진창! 피부 재생이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숙면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피부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자고 일어나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피부는 어떻게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을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사실 원리가 조금 복잡하긴 해요. 망막을 통해 빛이 들어오면 뇌가 이를 인식해 몸의 여러 기관에서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죠. 낮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활발하다가 15시간 후쯤 어스름이 밀려오면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멜라토닌이 분비되며 혈압이 낮아지고, 체온도 내려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부가 낮과 밤의 시간대를 인식하는 거죠.” 모델로 피부과 윤성환 원장의 설명이다. 이런 방식으로 피부는 햇빛이 비치면 자신을 방어하려 하고, 달이 뜨면 회복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와인 피부과의 김홍석 원장은 “과로하거나 수면이 부족해 생체 리듬과 피부 밸런스가 깨지면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아 각질이 많아지고, 피부가 푸석해지며, 안색이 칙칙해지는 결과가 나타납니다”라며 균형 잡힌 생체 리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피부 리듬에 생활 패턴을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장단에 맞춰 스킨 케어를 해야 할까? “시간대별로 피부가 필요로 하는 필수 기능만 충실히 지키면 돼요. 아침에는 보습과 자외선 차단, 저녁에는 진정과 재생, 주말에는 휴식과 회복에 집중하는 거죠.” 탑클래스 성형외과 전용훈 원장이 설명한다. 자 그럼 이제, 피부와 어떤 식으로 합주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DAY1 피부를 맑게 정화한다. 라네즈의 ‘퓨리파이톡스 부스팅 에센스’. 가격 3만8천원대. 2 피부가 환한 빛을 찾게 한다. 필로소피의 ‘터보 부스터 C 파우더’. 가격 6만5천원. NIGHT3 피부 재생과 주름 감소를 돕는다. 클라란스의 ‘멀티 액티브 유쓰 리커버리 크림’. 가격 8만5천원. 4 밤에 바르고 자면 피부가 촉촉하고 탄력 있어진다. 시세이도의 ‘나이트 모이스춰 리차지 인리치드’. 가격 5만원. 5 피부 독소를 효과적으로 빼준다. 시슬리의 ‘보태니컬 디-톡스’. 가격 25만원. WEEKEND6 보습 젤과 모공 클레이 마스크로 구성되었다. 에스티 로더의 ‘뉴트리셔스 래디언트 바이탈리티 2-스탭 트리트먼트’. 가격 9만원대. 7 피부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주말 전용 에센스. 샤넬의 ‘르 위켄드 드 샤넬’. 가격 15만원.
아침엔 보습과 자외선 차단이 필수 자는 동안엔 피부 호흡이 빨라지기 때문에 아침 피부는 늘 건조하다. 심지어 모공을 통해 땀과 노폐물이 잔뜩 분비된 상태다. 그렇다고 이중 삼중으로 클렌징을 하면 오히려 피부가 건조해지니, 유분만 닦아내는 정도로 가볍게 세안하고 토너는 가급적 생략한다. 그런 뒤 수분감이 좋은 로션을 발라 유수분 밸런스를 맞춘다. 여기에 좀더 힘을 보태고 싶다면 부스터나 퍼스트 에센스를 추가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외선 차단제로 철벽 방어하면 노화의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
자기 전엔 재생에 집중 깜깜한 밤이 되면 하루 종일 시달린 피부를 회복시키고 재충전에 집중해야 한다. 저녁은 자연적으로 피부 재생 능력이 회복되는 시간이니 레티노이드 같은 재생 성분이나 항산화 성분이 함유된 제품으로 힘을 실어준다. 이도 저도 어려울 땐 ‘나이트 크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밤 전용 화장품은 피부를 수용적인 모드로 변하게 하면서 세포가 마음놓고 활동하게 도와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탄력이나 미백 등 필요한 범주 내의 제품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주말에는 휴식과 회복이 우선 늦어지고 빨라졌던 피부의 시간을 재설정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 사실 피부를 충분히 쉬게 하는 것만으로도 피부 컨디션은 최고가 된다. 주중에 하지 못한 것을 욕심 내어 하다 보면 피부가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니, 피부가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가벼운 핸들링을 이용한 마사지나 꼼꼼한 스크럽, 릴랙싱을 위한 반신욕이면 충분하다.